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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았다 일어서는 순간,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지는 느낌을 경험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 느낌이 너무 익숙했습니다. 그러다 20살 여름, 은행 창구에서 그냥 서 있다가 쓰러질 뻔한 경험을 하고서야 '이게 단순히 체질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습니다. 그게 바로 기립성 저혈압이었습니다.
원인: 왜 일어서는 순간만 어지러울까
저는 오랫동안 이 증상을 빈혈 탓으로 돌렸습니다. 몸이 왜소하고 밥을 제때 잘 안 챙겨 먹는 편이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빈혈(anemia)과 기립성 저혈압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빈혈이란 혈색소 수치가 기준 이하로 낮아진 상태를 말하는데, 남성 기준 혈색소 13.5g/dL 미만이 되어야 빈혈이라고 봅니다. 빈혈의 주 증상은 어지럼증이 아니라 숨이 차는 것입니다. 그러니 앉았다 일어설 때만 머리가 핑 도는 분들은 빈혈보다는 기립성 저혈압을 먼저 의심하는 것이 맞습니다.
기립성 저혈압(orthostatic hypotension)이란, 일어서는 순간 중력에 의해 혈액이 하체로 쏠릴 때 이를 빠르게 보상하지 못해 뇌로 가는 혈압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경동맥에 분포한 압력 센서(압수용체, baroreceptor)가 혈압 저하를 감지해 자율신경계에 즉시 신호를 보냅니다. 자율신경계는 다리 혈관을 수축시키고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해서 혈압을 올려주는데, 이 반응이 느리거나 충분하지 않을 때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인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가장 흔한 것은 탈수입니다. 몸속 혈액량 자체가 줄어들면 중력에 대항해 위로 짜 올릴 혈액이 부족해집니다. 그 외에 오랜 당뇨로 인한 자율신경계 합병증, 파킨슨병, 뇌졸중, 급격한 체중 감소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체중과 혈압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10kg 정도 빠지면 혈압도 눈에 띄게 낮아집니다. 제가 특히 더운 여름에 이 증상이 심했던 것도 결국 땀으로 인한 탈수가 핵심 원인이었던 셈입니다.
- 탈수: 혈액량 감소로 보상 능력 저하
- 자율신경계 이상: 당뇨 합병증, 고령, 파킨슨병 등
- 약물: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고혈압 약 등 혈압 강하 작용
- 급격한 체중 감소: 혈압 저하로 이어짐
증상: 핑 도는 것과 기절은 어떻게 다를까
제가 은행에서 경험한 건 단순히 머리가 핑 도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서 있는 채로 온몸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지면서 바닥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 그 순간 머릿속엔 '여기서 기절하면 어떡하지', '쓰러지면 엄청 아프겠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게 실신 직전 상태였던 겁니다.
전형적인 기립성 저혈압의 증상은 일어선 직후 5~10초 이내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어지럼증입니다. 대부분은 짧게 끝나지만, 자율신경계 보상 반응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 15~20초 이상 지속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실신(syncope)으로 이어집니다. 실신이란 뇌로의 혈액 공급이 일시적으로 차단되어 의식을 잃는 상태를 말합니다.
임상적으로 기립성 저혈압은 누운 상태에서 혈압을 잰 뒤 일어서서 1분, 3분 시점에 다시 쟀을 때 수축기 혈압이 20mmHg 이상, 이완기 혈압이 10mmHg 이상 떨어지는 경우로 정의합니다(출처: American Heart Association). 증상의 차이는 수치보다 체감으로 더 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는 전혀 이상 없다가 일어서는 그 순간에만 증상이 생기는 게 특징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사우나나 뜨거운 탕 이용 후에도 유사한 증상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열로 인해 혈관이 확장되면 하체로 더 많은 혈액이 몰리고, 거기에 탈수까지 더해지면 보상 능력이 한계에 달하게 됩니다. 특히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은 탕 안에서 일어서다가 실신하는 사고가 실제로 발생하기도 하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대처법: 쓰러지기 직전,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제 경험상, 그 순간 가장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은행 창구에서 창피하다는 생각에 버티려 했는데, 그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뇌로 가는 혈압이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 서 있으면 그대로 기절합니다. 주변에서 부축해 일으켜 세우는 것도 직관적으로는 맞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 역시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머리를 최대한 빨리 낮추는 것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자세는 누워서 다리를 올리는 것이고, 그게 어렵다면 바로 앉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효과가 있습니다. 저도 그날 주변 분들이 눕혀 주셨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증상이 빠르게 회복됐습니다. 앉은 뒤에도 또 어지럽다면 쭈그려 앉는 자세가 도움이 됩니다. 하체 혈액을 위로 짜 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 후에는 바로 물을 마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맹물보다는 나트륨이 포함된 음료, 예를 들어 포카리스웨트 같은 전해질 음료가 혈압 회복에 더 효과적입니다. 혈관 내 수분을 붙잡아 두는 데 나트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충분한 수분 섭취가 기립성 저혈압 예방의 가장 기본이 됩니다(출처: NHS UK).
또한 약을 복용 중인 분들은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중 방광 기능 강화 약물은 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어 기립성 저혈압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고혈압 약을 새로 시작한 뒤 갑자기 기립 시 어지럼증이 생겼다면, 병원에서 잰 혈압은 높지만 집에서는 정상 수준인 이른바 백의 고혈압(white coat hypertension)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약의 강도가 실생활 혈압에 비해 지나치게 셀 수 있습니다.
예방: 일상에서 반복을 줄이는 습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립성 저혈압은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중증 질환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활 습관을 조금만 조정해도 빈도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은행 사건 이후로 일어날 때는 무조건 천천히 움직이는 습관이 생겼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핑 도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습관은 수분 섭취입니다. 특히 여름철처럼 땀 배출이 많은 시기에는 의식적으로 물을 자주 마셔야 합니다. 혈액량이 충분해야 일어설 때 뇌로 혈액을 올려 보낼 여력이 생깁니다. 물을 마실 때 약간의 소금기를 함께 섭취하면 체내 수분 보유 효과가 높아집니다.
두 번째로, 일어서기 전에 잠깐 준비하는 동작을 습관화하면 도움이 됩니다. 발목을 몇 번 돌리거나 발끝을 들었다 내리는 동작은 종아리 근육을 수축시켜 하체에 고인 혈액을 위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일어선 후에도 갑자기 빠르게 걷기보다는 잠깐 서 있는 시간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고령이거나 당뇨가 오래된 분들은 자율신경계 자체의 반응 속도가 느려져 있어 이 증상이 더 자주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위의 생활 습관 관리만으로 완전히 해결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증상이 심하거나 실신까지 이어진다면 반드시 전문의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기립성 저혈압 자체는 위험한 병이 아니지만, 그 뒤에 파킨슨병이나 뇌졸중 같은 기저 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앉았다 일어서면 항상 어지러운데 저혈압인가요, 빈혈인가요?
A. 일어서는 순간에만 어지럽다면 빈혈보다는 기립성 저혈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빈혈의 주 증상은 어지럼증이 아니라 숨이 차는 것이고, 혈색소 수치가 크게 낮아져야 어지럼증이 동반됩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나 계속 서 있을 때는 괜찮다가 자세 변화 시에만 증상이 온다면 기립성 저혈압을 의심하는 것이 맞습니다.
Q. 저혈압은 고혈압보다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걱정해야 하나요?
A. 갑자기 찾아오는 심각한 저혈압은 분명히 위험하지만, 그런 분들은 지금 일상생활을 하고 있기 어렵고 대부분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앉았다 일어설 때 잠깐 어지럽고 금방 회복되는 수준이라면 일시적인 기립성 저혈압이며, 생활 습관 개선으로 충분히 관리가 됩니다. 과도한 걱정보다는 수분 섭취와 자세 전환 속도를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Q. 기립성 저혈압 증상이 왔을 때 옆에서 잡아줘도 되나요?
A. 그냥 세운 채로 부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뇌로 가는 혈압이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 서 있으면 실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올바른 대응은 즉시 앉히거나 눕히고 다리를 올려주는 것입니다. 그 자세에서 전해질이 포함된 음료를 마시게 해주면 회복이 더 빠릅니다.
Q.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 오히려 어지러운데 정상인가요?
A. 고혈압 약 복용 후 기립 시 어지럼증이 생긴다면, 병원에서 잰 혈압은 높지만 집에서 일상 중 혈압은 정상 범위인 백의 고혈압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약의 강도가 실제 혈압에 비해 지나칠 수 있으니 처방 의사와 반드시 상의해서 용량 조정 여부를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저는 20살 그 여름 이후로 기립성 저혈압이라는 단어를 제 몸에 처음 연결 짓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빈혈이겠거니, 허약 체질이겠거니 하며 넘겼는데, 은행 창구에서 쓰러질 뻔한 그 경험이 오히려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결국 이 증상은 무서운 병이 아니라, 몸이 자세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는 순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물을 자주 마시고, 일어설 때 천천히 움직이고, 증상이 오면 바로 앉는 것. 이 세 가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증상이 자주 반복되거나 실신까지 이어진다면, 당뇨나 파킨슨병 같은 기저 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 전문의 상담을 미루지 않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