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 "땀이 많이 나는 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반대 상황에서 크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오히려 땀이 멈췄을 때,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을 때가 진짜 위기였습니다. 일사병과 열사병, 이 두 가지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전혀 다른 질환입니다.
일사병과 열사병, 뭐가 다른가
일사병(heat exhaustion)이라는 말, 흔히 "더위를 먹었다"고 표현하죠. 저도 그게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사병과 열사병은 같은 온열 질환 계열이면서도 위험도가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실제로 이 둘의 차이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저 역시 그날 더 빠르게 움직였을 겁니다.
일사병은 강한 햇빛 아래 오랜 시간 노출되어 과도한 발한(發汗), 즉 땀을 지나치게 많이 흘리면서 체내 수분과 전해질이 급격히 소실되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전해질이란 나트륨, 칼륨 같은 미네랄 성분으로, 근육과 신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입니다. 이게 부족해지면 근육 경련이 오고, 극심한 피로와 무력감, 어지러움, 메스꺼움, 두통이 따라옵니다. 체온은 대개 37~40도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의식은 비교적 명료하게 유지됩니다. 적절히 쉬고 수분을 보충하면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서운 질환이긴 해도 빠른 대처가 가능합니다.
반면 열사병(heat stroke)은 차원이 다릅니다. 열사병은 단순한 탈수 문제가 아니라 체온 조절 중추, 즉 뇌의 시상하부가 손상되면서 몸 스스로 열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체온 조절 중추란 우리 몸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뇌 속의 조절 시스템을 말합니다. 이 기능이 무너지면 체온이 40도를 넘어 계속 오르고, 피부는 뜨겁고 건조하며 붉어지고, 결정적으로 의식 변화가 나타납니다. 의식 혼미나 헛소리 등 중추신경계 장애가 동반되는 가장 위험한 질환입니다.
그리고 체온이 높아지면 열을 외부로 발산하기 위해 체표면의 혈액량은 늘어나고 심부의 혈액량이 감소하게 되어, 뇌로 가는
혈액량이 부족하여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앉아있거나 누위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나거나 오래 서 있을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날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잠시 휴식을 하다 화장실에 들른 후 거울에서 토마토 같은 얼굴을 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건조하고 붉은 피부 자체가 열사병의 전형적인 신호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열사병의 사망률은 50~90%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는 솔직히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응급의학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연간 몇 건씩 직접 보게 되는 실제 현장 통계가 이 수준이라고 하니, 가볍게 볼 수 없는 숫자입니다.
- 일사병: 체온 37~40도 / 땀을 많이 흘림 / 의식 명료 / 수분·전해질 보충으로 회복 가능
- 열사병: 체온 40도 이상 / 땀이 거의 나지않음 / 의식 혼미, 헛소리 등 중추신경계 장애 동반 / 즉시 119 신고 필수
- 열경련: 땀 배출 후 수분과 전해질이 부족해져 팔, 다리 복부에 근육 경련과 통증 발생
- 공통점: 고온 환경 장시간 노출 / 두통,어지럼증 선행 / 빠른 대처가 예후를 결정

응급처치와 예방,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열사병 환자가 쓰러진 현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19 신고입니다. 이건 의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신고 직후부터 환자 체온을 낮추는 행위를 즉시 병행해야 합니다. 젖은 수건, 얼음팩, 선풍기 바람 등을 이용해 빠르게 냉각을 시도하는 것이 응급 냉각 요법(rapid cooling therapy)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응급 냉각 요법이란 체온 조절 중추가 작동하지 않는 환자에게 외부에서 강제로 열을 빼내어 장기 손상을 줄이는 조치를 말합니다. 119를 기다리는 사이에도 이 과정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작년 여름,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분이 사망한 뉴스를 보았을 때 제가 느꼈던 감정이 단순한 안타까움이 아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건이 보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역시 현장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너무 더운 날이었고, 주변 동료들은 땀을 비 오듯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땀이 멈춰 있었고, 두통이 계속됐습니다. 거울을 보는 순간 얼굴이 시뻘게진 걸 확인했고, 어지럼증이 몰려오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나서야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의료진은 조금 더 그 상태로 있었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동료가 곁에 있었고 제 상태의 이상함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홀로 작업하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뉴스에서 봤던 그분과 저의 차이는 운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 경험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문장입니다.
온열 질환 예방에 관해서는 "충분히 쉬면 된다"는 식의 단순한 조언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조금만 더", "이것만 끝내고"라는 생각이 상식을 이깁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폭염 시 야외 노동자의 체계적인 휴식 주기와 수분 보충을 명시적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특히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의 직사광선은 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내 몸의 신호를 먼저 읽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땀이 갑자기 줄어들었다면, 피부가 평소보다 뜨겁고 건조하다면, 두통이 오면서 어지럽다면, 이 세 가지 신호가 동시에 나타날 때는 지체 없이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조금 참으면 괜찮아진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생각 때문에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제 경험상 그게 통하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온열 질환은 조심하면 피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정작 위험한 순간은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판단이 앞설 때 찾아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현장에서 혼자 있는 상황이 많은 분들일수록 더더욱 자기 몸의 신호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땀의 변화, 피부 상태, 어지럼증, 이 세 가지를 수시로 체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예방입니다.